오늘도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촛불이 밝혀졌습니다. 광우병과 정부가 만들어낸 웃지 못 할 촌극 때문에 10대 청소년부터 시작하여 공무원 및 가정주부 그리고 어르신들까지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왔습니다. 정부의 반성과 특단의 조치가 없다면 이 촛불은 계속 거리에서 밝혀지겠죠.
촛불의 상징은 희생입니다. 그것도 거대한 희생이 아닌, 개인의 희생입니다. 촛불은 자기 주변만 간신히 밝힐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기가 세상을 밝히는 이 시대에 촛불은 보잘 것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정전이 되어 깜깜한 세상이 왔을 때, 조그마한 몸을 태우며 잔잔하게 세상을 밝히는 촛불.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온 시민들, 지금 그들이 깜깜한 세상을 잔잔하게 밝히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지금으로부터 약 100 여 년을 거슬러 올라가면 촛불 대신에 죽창을 들고 거리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1894년 1월 고부에 가면 하얀 옷을 입고 상투를 올린 농민들이 모여 죽창을 들고 봉기를 일으킨 광경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갑오동학농민혁명’입니다. ‘동학농민운동’이라고 부르는 이들도 있지만, 저는 혁명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비록 수십만의 희생자를 내고 좌절되었지만, 한국의 근·현대사를 결정지은 역사의 일대 사건이자 봉건적 사회질서를 타파하고 외세의 침략을 물리치기 위해 반봉건·반외세의 기치를 높이 세운 우리 역사상 최대 규모의 민중항쟁이었기 때문입니다.
세계 역사에서 근대와 현대는 바로 민중이 주인이 되는 민주화와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지 않는 자주 독립 국가를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반외세의 자주독립과 반봉건의 민주화를 이룩하려는 갑오동학농민혁명은 올바른 역사발전의 방향을 제시해 주었습니다. 동학농민군은 인간평등의 실현, 사회비리의 척결, 외국 침략세력의 구축이라는 대의명분을 실현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봉기했습니다.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나고 10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수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우리 민족은 잘못 돌아가는 세상과 권력을 향해 거침없이 ‘아웃’을 외치고 있습니다.
서울로 가는 전봉준 / 안도현
눈 내리는 만경들 건너가네
해진 짚신에 상투 하나 떠가네
가는 길 그리운 이 아무도 없네
녹두꽃 자지러지게 피면 돌아올거나
울며 울지 않으며 가는
우리 봉준이
풀잎들이 북향하여 일제히 성긴 머리를 푸네
그 누가 알기나 하리
처음에는 우리 모두 이름 없는 들꽃이었더니
들꽃 중에서도 저 하늘 보기 두려워
그늘 깊은 땅 속으로 젖은 발 내리고 싶어하던
잔뿌리였더니
그대 떠나기 전에 우리는
목 쉰 그대의 칼집도 찾아주지 못하고
조선 호랑이처럼 모여 울어주지도 못하였네
그보다도 더운 국밥 한 그릇 말아주지 못하였네
못다 한 그 사랑 원망이라도 하듯
속절없이 눈발은 그치지 않고
한 자 세 치 눈 쌓이는 소리까지 들려오나니
그 누가 알기나 하리
겨울이라 꽁꽁 숨어 우는 우리나라 풀뿌리들이
입춘 경칩 지나 수군거리며 봄바람 찾아오면
수천 개의 푸른 기상나팔을 불어제낄 것을
지금은 손발 묶인 저 얼음장 강줄기가
옥빛 대님을 홀연 풀어헤치고
서해로 출렁거리며 쳐들어갈 것을
우리 성상(聖上) 계옵신 곳 가까이 가서
녹두알 같은 눈물 흘리며 한 목숨 타오르겠네
봉준이 이 사람아
그대 갈 때 누군가 찍은 한 장 사진 속에서
기억하라고 타는 눈빛으로 건네던 말
오늘 나는 알겠네
들꽃들아
그날이 오면 닭 울 때
흰 무명띠 머리에 두르고 동진강 어귀에 모여
척왜척화 척왜척화 물결소리에
귀를 기울이라
전에 다니던 대학에서 <동학농민혁명사>라는 수업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당시의 교수가 우스갯소리로 이런 일화를 소개하더군요. 전두환이 잘못된 과정으로 정권을 잡은 다음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여러 작업을 했다고 합니다. 그 중에 하나가 역사 인물 속에서 자신과 비슷하다고 느끼는 인물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때마침 ‘전봉준’이라는 인물을 찾을 수 있었죠. 전두환은 족보학자 등을 불러다가 전봉준의 ‘전’과 전두환의 ‘전’의 관계에 대해 찾아보라고 지시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전봉준의 전 씨와 전두환의 전 씨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고 합니다. 이런 일 때문이었을까요? <동학농민혁명>의 많은 유적지가 전두환 시대 때 개발 되었다고 하니, 참 아이러니 합니다.
안도현 시인은 경북 예천 출신입니다. 고교시절까지 경북에서 보내고 익산에 있는 원광대학교에 입학을 합니다. 81년엔 지방지로 83년엔 중앙지로 등단을 했는데, 등단작의 제목이 참 재밌습니다. 첫번째 등단작의 제목은 <낙동강>이었고 두번째 등단작이 바로 위의 시 <서울로 가는 전봉준>입니다. 하나는 경상도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또 하나는 전북 동진강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영호남 화합이 이런 게 아닐까요? <서울로 가는 전봉준>이 쓰여진 사연도 재밌습니다. 당시 사학과에 재학 중이던 사모님의 전공서적에서 서울로 압송 중인 전봉준의 사진을 보고 시를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작은 키에, 왜소한 몸매에, 잡혀가고 있는데도 눈빛이 살아있는 전봉준의 모습이 안도현 시인을 사로잡은 모양입니다.
만경과 동진강 일대를 한번 둘러보셨으면 합니다. 그러면 <서울로 가는 전봉준>의 화자가 될 수 있습니다. 전봉준에게 '자네'라고 부르며 신세 한탄도 한번 해보셨으면 합니다. 전북지역은 개발이 더딘 편이라 동학혁명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곳이 많습니다. 전봉준이 밟았던 땅을 밟으며, 당시의 농민들의 마음을 이해해 보는 것도 좋겠죠. '농자천하지대본'이라고 했던가요? 농민이 천하의 근본이라는 말. 저는 이 말이 정말 맞는 말이라고 생각됩니다.
세상이 뒤숭숭합니다. 이럴 때일 수록 과거 속을 돌아봤으면 합니다.
나들이 코스!
전북지방은 <동학농민혁명>과 인연이 깊은 곳입니다. 정읍시 고부면 고부리 현 고부초등학교에 가면 관아 터를 볼 수 있습니다. 전봉준 생가와 황토현 등 수많은 중요 유적지가 전북지방에 위치해 있습니다. <동학농민혁명 기행>을 준비 중이라면 전북지방에서 삼사일은 묵었다 가셔야 할 듯싶습니다.
전주권
삼례역참 터, 독배재, 용머리고개, 완선전투, 풍남문, 경기전, 위봉산성, 오목대, 한벽당, 동학농민군 전주입성비, 전주객사, 김개남 처형지(초록바위), 삼례봉기 역사광장, 동학농민혁명 삼례봉기 기념비, 사자암, 대둔산전투
고창권
전봉준 생가터, 무장기포터, 여시뫼봉, 흥덕동헌, 고창읍성, 무장동헌, 무장객사, 정백현 생가터, 순화중 도소, 선운사 도솔암 마애불
남원권
동학 초기 포교지 터, 은적암, 백산봉기 집결지, 남원관아터(남원집강소), 남원 농민군 훈련터, 방아치전투지, 관음치전투지, 원촌전투, 남원성전투, 박복양 비, 김영원 생가터, 최시형 은신지, 갑오동학혁명 기념비, 평지말전투
사발통문 작성지, 동학혁명 모의탑, 무영농민군 위렵탑, 고부관아터, 군자정, 말목장터, 만석보 유지비, 예동마을, 백산봉기, 황토현전투, 사시봉, 태인 성황산전투, 태인동헌, 전봉준 단비, 전봉준 고택, 전봉준 체포지, 조규순 영세불망비, 갑오동학혁명 100주년 기념탑, 김개남 묘역, 순화중 묘역, 최경선 묘, 최경선 생가터, 무성서원, 부안집강소 도소
김제권
구미란전투지, 전주입성 직전 선전관 처형지, 김덕명 생가터, 원평집강소
내일도 수많은 시민들이 전봉준 같은 눈으로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서겠죠. 시민들이 혁명을 꿈꾸는 것은 아니지만 무엇인가를 바꾸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 아닌가요? 아직 촛불을 들지 못하는 분이라면 전봉준을 만나보면 좋겠습니다. 전봉준을 만나서 왜 세상을 바꾸기 위해 거리로 나서야 하는지, 이야기를 들었으면 합니다.
나들이 포인트!
○ 동학농민혁명기념관에서는 동학농민혁명 이후 잔존세력의 사회개혁 방향과 새로운 세상을 열기 위한 의지를 항일운동과 연계하여 정립하여, 탐방객이 동학농민혁명 진압 이후의 사회변혁 운동세력의 주체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동학농민혁명기념관 개관 4주년 기념 “동학농민혁명의 후예들... 그들이 꿈꾼 세상” 특별전을 개최합니다.
○ 이번 특별전에서는 동학농민혁명 봉기의 실패로 수많은 농민이 희생되었지만, 동학농민군은 영학당, 남학당, 그리고 활빈당 등을 각각 조직하여, 조선사회의 변혁과 제국주의 국가의 침략에 저항하였던 그들의 몸부림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입니다.
○ “동학농민혁명의 후예들... 그들이 꿈꾼 세상” 특별전은 2008년 5월 11일부터 8월 17일까지 동학농민혁명기념관 특별전시실에서 계속됩니다.
○ 이번 특별전에 여러분을 초대하오니 뜻 깊은 자리를 함께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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