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바뀌고 아스팔트길과 길쭉한 도로가 생겨나고 철로가 놓이면서 우리의 옛길은 조금씩 자취를 감췄습니다. 그러나 개발이 더딘 지방에서는 형태로나마 옛길을 보전하는 곳이 많습니다. 구대로 중에서도 고산자 김정호 선생의 ‘대동여지도’에 나타난 영남대로와 호남대로(삼남대로)는 민족 이동의 근간이자, 왜군의 침탈을 막는 가장 중요한 대로였다고 합니다.
서울 한양을 출발해 용인-충주-문경-상주-구미-대구-청도-밀양-삼랑진-양산-부산 동래에 이르는 영남대로의 ‘대동지지’ 원래 이름은 동남지동래사대로(東南至東萊四大路), 일명 동래로라고도 불리며 950리 길 위에 있던 옛 역과 원 이름의 절반 정도는 마을의 지명으로 남아 있습니다. 한양에서 전남 해남 우수영까지의 호남대로는 일명 해남로로 불리며, 구대로 중에선 팔대로(八大路)에 해당합니다. 한양 동작진-남태령-과천-안양-수원-평택-천안-공주-논산-김제-정읍-장성-나주-영암-해남에 이르는 970리나 굳센 줄기처럼 뻗어 있습니다.
일본으로 가는 조선통신사들의 통행로가 바로 영남대로였으며, 과거 급제한 이몽룡이 어사가 되어 춘향을 찾은 길이자 추사 김정희 선생의 제주도 유배길이 호남대로였다고 합니다.
제가 찾은 곳은 호남대로의 눈곱만큼 작은 일부입니다. 어쩌면 호남대로를 걷다가 지친 이들이 잠시 쉬었다 가는 곳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바로 만경강 상류가 길을 가로질러 유유히 흐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반대로 걸었습니다. 전주 쪽이 아닌, 삼례 쪽에서 길이 끊기는 지점을 찾아 걸었습니다.
비비정 마을을 가기 위해서는 삼례읍 중심지를 통해 가야합니다. 익산으로 향하는 국도 1호선을 만나게 되지만 옛길을 호남고속도로와 나란히 삼례중앙초등학교 옆을 지납니다.
삼례는 동학농민혁명에서 각별한 의미가 있는 곳입니다. 1894년 9월(음력) 10만여 농민군이 항일 투쟁의 깃발을 앞세우고 재집결한 2차 봉기 장소입니다. 일본군이 경복궁을 침범하고 청일전쟁을 일으키자 일본군과 탐관오리를 아내기로 결의한 농민군들은 삼례뜰에서 거대한 물결을 이루었습니다. 이에 앞서 1892년 11월(음력)에는 동학교도 수천명이 교조 최제우의 억울함을 탄원하기 위해 모인 장소이기도 합니다. 이른바 교조신원운동(敎祖伸寃運動)라고 불리웁니다.
삼례집회는 전라감영의 무력진압을 각오한 것으로 실은 탐관오리에 대한 투쟁이었습니다. 이들은 삼례역에 모여 두차례 전라감영에 의송(議送)을 보내 동학 교조의 신원(伸寃)을 할 것과 동학도에 대한 수탈 중지를 요구했다고 합니다. 삼례집회는 본뜻을 이루지 못했으나 동학도에 대한 부당 주구금지 조치를 얻어냈습니다.
이곳에 오르면 전주시내와 호남평야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앞으로는 한내가 흐르고 주변으로 드넓은 평야가 펼쳐져 풍광이 대단히 아름답습니다. 옛 조상들은 이곳을 비비낙안(飛飛落雁)이라 했다. 양반들은 이 정자에 앉아 술을 마시고 시를 지어 주고 받으며 정취를 달랬다고 합니다. 깊고 천이 넓어 군산, 부안에서 온 소금배와 젓거리배가 쉴새 없이 오르내렸다고 하는데, 지금은 낚시꾼만이 다녀갑니다. 호남대로는 비비정 옆 언덕을 지납니다.
전라선 철도도 동산농장에서 생산되는 쌀을 반출하기 위해 부설된 사설 협궤 철도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동산농장이 있던 곳에는 전주월드컵경기장이 들어섰습니다. 옛길은 완주군 삼례읍을 지나 구정·용정·용덕마을을 지나면서 평야지대를 달립니다.
더이상 갈 수 없었습니다. 건널 수 있는 다리가 없었습니다. 날씨마나 좋았다면 더 월드컵경지강까지 선명하게 보였을 텐데, 아쉬움이 남습니다. 옛길은 전북의 도청 소재지인 전주시의 서쪽 변두리를 지납니다. 그러니까 제가 걷고 있는 저 반대편 길 말입니다. 그곳은 호남대로라는 옛말이 무색할 정도로 나지막한 구릉지대를 지나는 옛길은 한적한 2차선 도로로 변했습니다. 한 기사에서는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옛날 원이 있었다 해 붙여진 전주시 원동을 지난 옛길은 전주∼군산간 국도 26호선과 교차한다. 국도 26호선은 호남평야에서 생산된 쌀을 군산항을 통해 일본으로 반출하기 위해 일제가 만든 길이다. 봄이면 전국에서 가장 긴 일백리 벚꽃터널을 이룬다. 벚나무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재일교포들이 전해준 것이다. 일제가 수탈을 위해 만든 길에 재일교포들이 일본의 나라꽃을 심은 길은 이제 전주와 익산, 군산을 연결하는 산업도로로 변했다.
옛길을 걷고 돌아오는 길. 과거객이 된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날마다 시험을 치는 듯합니다. 아니면 봇짐을 등에 짊어맨 보따리 장사일까요? 어깨가 무겁습니다. 역사 속에서 걸어나오는 날입니다. 이 역사를 계속 이어나가는 게 우리의 사명이 아닐까요? 여러가지 문제로 전국이 왁자지껄 합니다. 호남대로에 찍힌 조상의 수없는 발자국에게 부끄럽지 않는 민족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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