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무덤을 상상해 본적이 있나요? 진시황제처럼 수천 수만의 동지와 함께 깊은 땅속에 사는 상상을 했나요? 아니면 볕 좋은 언덕의 소박한 봉분 속에서 살아가는 상상을 했나요? 저는 제 무덤을 상상해 본적이 없습니다. 아직 살날이 살아온 날보다 많이 남았고, 해야할 일이 너무 많으니까요. 그러나 가끔 죽음 뒤의 세상에 대해 생각을 하곤 합니다. 저는 예술가들이 죽어서 한 마을에 모여 함께 살고 있다면 참 재미나는 일이 생기겠구나, 이런 넋두리를 하곤합니다. 김수영과 백석이 막거리를 퍼마시다가 멱살을 잡고, 보들레르와 서정주가 서로의 시를 봐주다가 삐쳐서 한동안 말을 안하고, 빅토르 위고가 친일파 작가들을 한데 모아다가 폭력을 휘두르는 상상. 재미 있지 않나요?
무덤, 하면 떠오르는 시가 있습니다. 이 한 편의 뛰어난 시를 남기고 요절 했다는 함형수 시인의 <해바라기 비명>이 떠오릅니다. 한 번 읽어볼까요?
해바라기 비명(碑銘) / 함형수
- 청년 화가 L을 위하여
나의 무덤 앞에는 그 차거운 빗돌을 세우지 말라.
나의 무덤 주위에는 그 노오란 해바라기를 심어 달라.
그리고 해바라기의 긴 줄거리 사이로 끝없는 보리밭을 보여 달라.
노오란 해바라기는 늘 태양같이 태양같이 하던 화려한
나의 사랑이라고 생각하라.
푸른 보리밭 사이로 하늘을 쏘는 노고지리가 있거든
아직도 날아 오르는 나의 꿈 이라고 생각하라.
- 청년 화가 L을 위하여
나의 무덤 앞에는 그 차거운 빗돌을 세우지 말라.
나의 무덤 주위에는 그 노오란 해바라기를 심어 달라.
그리고 해바라기의 긴 줄거리 사이로 끝없는 보리밭을 보여 달라.
노오란 해바라기는 늘 태양같이 태양같이 하던 화려한
나의 사랑이라고 생각하라.
푸른 보리밭 사이로 하늘을 쏘는 노고지리가 있거든
아직도 날아 오르는 나의 꿈 이라고 생각하라.
또 무덤, 하면 <강아지똥>으로 널리 알려진 권정생 선생님이 생각납니다. 그는 어린아이처럼 살고, 어린아이처럼 살다가 세상을 뜨셨습니다. 권정선 선생님은 자신이 죽으면 집을 포크레인으로 밀어서 땅으로 돌려주라고 했답니다. 그는 동화를 써서 큰돈을 벌었지만 절대 자신을 위해 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평생 흙집에 머물렀습니다. 권정생 선생님이 살았던 집, 집은 곧 무덤입니다. 그러나 권정생 선생님을 기리기 위해 아직 그 흙집은 보존되어 있습니다.
제 무덤은 자라고 있습니다. 겨울에 죽은 듯이 있다가 봄이 되니까 푸른 잎사귀를 내보냈습니다. 작년 이맘 때 화분에 옮겨심은 단풍나무, 선인장이며 행운목까지 죽인 전력이 있는 저로서는 일년 넘게 식물을 키우고 있다는 게, 스스로 대견스럽기도 합니다. 강의시간에 옮겨 심은 단풍나무, 자랑스러워 교수님에게 사진을 찍어 보냈습니다. 그런데, 이런 답장이 오더군요.
이놈이 햇볕 쪽으로 몸이 기울었구나.
가끔씩 방향을 틀어주거라.
화분 크기를 보니 아직은 옮겨 심을 때가 아닌 듯하다.
올해 한번 더 이 화분에서 잎을 보도록 하여라.
바깥 마당이 있다면 이따금 내놓아도 좋을 것이다.
단풍나무의 눈을 보니 건강한 편이다.(노총각 방에서 고생은 심했을 것이로되!)
앞으로 이 나무를 잘 키워
나중에는 마당이 있는 집의 흙에다 심어라.(그걸 '방목'이라고도 한다는구나)
그 나무가 자라면(그때는 너도 점점 늙을 것이고)
그리고 너도 갈 때가 되면, 누울 자리를 잘 찾아서
이 단풍나무 밑에서 죽어라.
그때까지는 시 많이, 열심히 쓰자.
가끔씩 방향을 틀어주거라.
화분 크기를 보니 아직은 옮겨 심을 때가 아닌 듯하다.
올해 한번 더 이 화분에서 잎을 보도록 하여라.
바깥 마당이 있다면 이따금 내놓아도 좋을 것이다.
단풍나무의 눈을 보니 건강한 편이다.(노총각 방에서 고생은 심했을 것이로되!)
앞으로 이 나무를 잘 키워
나중에는 마당이 있는 집의 흙에다 심어라.(그걸 '방목'이라고도 한다는구나)
그 나무가 자라면(그때는 너도 점점 늙을 것이고)
그리고 너도 갈 때가 되면, 누울 자리를 잘 찾아서
이 단풍나무 밑에서 죽어라.
그때까지는 시 많이, 열심히 쓰자.
교수님 덕분에 제 무덤은 손바닥만한 단풍나무가 되었습니다. 식물을 정성스럽게 키우게 되니 깨달은 게 많습니다. 잎사귀 한 장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내가 함부러 꺽는 나무의 가지와 잎사귀가 얼마나 위대하고 귀한 것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화분에 담긴 작은 단풍나무, 잎사귀 한 장, 한 장이 열릴 때마다 신비롭습니다. 저는 화분 앞에 한참 쭈그려 앉아 그것을 지켜봅니다. 하루, 이틀이 지나면 활짝 잎사귀를 펴는 단풍나무. 제 무덤은 잘 자라고 있습니다.
제가 갈 때가 되어 누울 자리를 찾게 되면 단풍나무는 제 그늘을 빌려줄까요? 저는 단풍나무에게 '은유'라는 이름을 지어줬습니다. 단풍나무보다 늦게 키우기 시작한 차나무에게는 '직유'라는 이름을 지어줬고요. 차나무보다 조금 늦게 우리집에 들어온 콩란에게는 '환유'라는 이름을 지어줬습니다. 문학도가 키우는 식물 이름 같은가요? 단풍나무 그늘 아래서 죽기 전에, 차나무에서 딴 차잎으로 차를 마시고, 콩란을 바라보며 썩 괜찮게 죽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시를 열심히 써야겠지요?
'꿈을꾸는창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촛불 오적 (집단창작시) (0) | 2008/07/03 |
|---|---|
| 화분 속의 내 무덤 (0) | 2008/05/21 |

이올린에 북마크하기
이올린에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