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삽입 이미지

판테온 신전 가는 길


 뮤지컬 <레 미제라블>을 런던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한국에 있을 때보다 외국에서 내뱉는 알파벳의 숫자가 적을 정도의 영어 수준을 갖은 저는, 무대를 멀뚱멀뚱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대작은 대작이었습니다. 대사를 알아듣지 못해도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으니까요. 아직까지 귓속에 맴도는 대사가 있습니다.  “Who am I? Who am I? I am Jean Valjean!” 자신의 죄를 부끄럽지만 떳떳하게 밝힐 줄 아는 사람이야 말로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요? 그러면 저는 참 불행한 사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레 미제라블>의 인연 때문이었을까요? 판테온 신전을 가게 되었습니다. 일행들과 함께 파리를 거닐다가 잠깐 헤어져서 다니기로 결정을 하자마자, 저는 판테온 신전으로 갔습니다. 언덕에 위치한, 거대한 건물은 참 찾기 쉬웠습니다. 웅장한 돔을 보고 걸어가면 길 잃을 걱정은 없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판테온 신전 정면


 파리의 판테온 신전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로마의 판테온 신전을 본딴 성당입니다. 1744년 병석에 있던 루이 15세가 파리의 수호 성녀인 성 쥬느비에브에게 기도를 하면서 "병이 나으면 성 쥬느비에브를 위한 성당을 짓겠다."고 서원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의 병이 치유되자 폐허가 된 쥬느비에브 대수도원(Abbaye St. Genevieve) 자리에 성당을 건립하게 되었습니다. 설계는 자크 제르맹 수플로(Jacques Germain Soufflo)에게 맡겨졌으며 성당 공사는 1764년부터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1780년 수플로가 사망하자 장 밥티스테 롱들레(Jean Baptiste Rondelet)와 막시밀리안 브레비온(Maximilien Brebion)이 공사를 이어받아 1790년 돔Dom 83m, 정면 84m, 측면 110m의 웅장한 성당을 완공하게 됩니다.
 그런데 1789년 프랑스 혁명이후 1791년 혁명정부의 정치가였던 미라보(Honore Gabriel Riqueti de Mirabeau)가 급사한 후 이곳에 처음 안치되면서부터 로마의 판테온(Pantheon: 신들을 모시는 신전)에서 이름을 빌려 "파리의 판테온"이라 명명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기둥이 있는 돔의 모양은 런던의 세인트폴 대성당의 영향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웅장하지만 아름다운 돔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참 멀리가서야 전체 모습이 잡혔습니다


 화려한 코린트 양식으로 만들어진 정문의 6개 기둥 위에는 다비드 당제(David d'Angers)의 페디먼트가 있고 그 아래에는 “조국이 위대한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Aux Grands Hommes la Patrie Reconnaissante)”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습니다. 안에는 퓌비 드 샤반느(Puvis de Chavannes)의 작품과 안토니 장 그로(Antoine Jean Gros)의 천장 그림과 다양한 조각 등으로 장식되어 있는데, 중앙에는 1851년 3월 31일 장 베르나르 레옹 푸코(Jean Bernard Leon Foucault)의 진자 실험 때 사용되었던 추가 아직도 있다고 합니다.
 볼테르, 루소, 에밀 졸라, 빅토르 위고 등이 이곳에 묻혀 있습니다. 위대한 사상가와 작가가 파리의 높은 언덕에서 웅장하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살고 있었습니다. 똑똑한 위인들이 밤중에 토론이라도 하면 어떤 풍경이 벌어질까요? 누가 가장 말을 잘 할까요? 볼테르가 "나는 당신의 의견에 반대한다. 그러나 당신의 말할 권리를 위해서라면 목숨이라도 걸겠다."라고 말하면서 침을 튀긴다면 다들 고개를 휙, 돌리겠죠. 내부를 보고싶었지만 안타깝게도 너무 늦게 찾아가 문 앞에서 발걸음을 놀려야 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강 건너편에서 바라본 노트르담 성당


 일행과 다시 만나기 위해 노트르담 성당으로 향했습니다. 빅토르 위고의 <노트르담 드 파리>의 배경으로 널리 알려진 곳입니다. 고딕양식의 화려한고 날카로운 모습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건물 자체를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킨 유럽인의 장인정신, 본받을만 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저 하늘 높이 올라간, 첨탑. 중세시대 유럽인은 저 첨탑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갔습니다. 고딕시대의 수직적 질서가 무너지고 르네상스의 수평적 질서가 찾아올 때까지 어둠의 시대를 살아야 했습니다. <노트르담 드 파리>의 곱추처럼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노트르담의 정면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세느강이 흐릅니다


 시간이 남아 다시 강을 건넜습니다. 세느강을 옆을 담배 사러 나온 백수처럼 거니는 느낌이 참 좋았습니다. 자유로운 도시, 파리. 곳곳에서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예술을 사랑하는 도시, 파리. 제 기억에 남은 파리의 모습입니다. 문득, 빅토르 위고도 이 길을 거닐었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아니, 그가 옆에서 걷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는동안 날이 저물었습니다. 파리의 아름다운 밤이 시작되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거리에서 인형극을 하는 사람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자유로운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거리의 악사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삼례 비비정의 모습

 역사로만 기억되는 길이 있습니다. 이젠 누렇게 색이 바랜 옛 지도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삼국시대 이후 수천년 동안 민족의 핏줄이 되어준 옛길들. 우리의 조상들은 지방을 대표하는 가장 ‘큰길’에 ‘대로’라는 이름을 붙여줬다고 합니다. 조선시대, 수도 한양을 주심으로 전국으로 뻗어 있던 구대로가 바로 그것입니다. 봇짐을 등에 둘러 맨 보부상과 입신양명을 꿈꾸며 과거시험을 보러 떠나던 선비들이 발길이 끊이질 않았던 대로. 그 길 위에는 주막과 원과, 객주가 생겨났습니다. 현재의 지명 가운데 ‘원’ 자가 붙은 곳(이태원, 노원, 장호원)과 주막거리, 구역터, 역말과 같은 지명을 가진 지역은 모두 옛 대로에 있던 곳이라고 보면 됩니다.
 세상이 바뀌고 아스팔트길과 길쭉한 도로가 생겨나고 철로가 놓이면서 우리의 옛길은 조금씩 자취를 감췄습니다. 그러나 개발이 더딘 지방에서는 형태로나마 옛길을 보전하는 곳이 많습니다. 구대로 중에서도 고산자 김정호 선생의 ‘대동여지도’에 나타난 영남대로와 호남대로(삼남대로)는 민족 이동의 근간이자, 왜군의 침탈을 막는 가장 중요한 대로였다고 합니다.
  서울 한양을 출발해 용인-충주-문경-상주-구미-대구-청도-밀양-삼랑진-양산-부산 동래에 이르는 영남대로의 ‘대동지지’ 원래 이름은 동남지동래사대로(東南至東萊四大路), 일명 동래로라고도 불리며 950리 길 위에 있던 옛 역과 원 이름의 절반 정도는 마을의 지명으로 남아 있습니다.  한양에서 전남 해남 우수영까지의 호남대로는 일명 해남로로 불리며, 구대로 중에선 팔대로(八大路)에 해당합니다. 한양 동작진-남태령-과천-안양-수원-평택-천안-공주-논산-김제-정읍-장성-나주-영암-해남에 이르는 970리나 굳센 줄기처럼 뻗어 있습니다.  
 일본으로 가는 조선통신사들의 통행로가 바로 영남대로였으며, 과거 급제한 이몽룡이 어사가 되어 춘향을 찾은 길이자 추사 김정희 선생의 제주도 유배길이 호남대로였다고 합니다.

  제가 찾은 곳은 호남대로의 눈곱만큼 작은 일부입니다. 어쩌면 호남대로를 걷다가 지친 이들이 잠시 쉬었다 가는 곳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바로 만경강 상류가 길을 가로질러 유유히 흐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반대로 걸었습니다. 전주 쪽이 아닌, 삼례 쪽에서 길이 끊기는 지점을 찾아 걸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삼례에서 비비정 가는 길.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카시아 향이 옛길을 물들이고 있습니다.

  비비정 마을을 가기 위해서는 삼례읍 중심지를 통해 가야합니다. 익산으로 향하는 국도 1호선을 만나게 되지만 옛길을 호남고속도로와 나란히 삼례중앙초등학교 옆을 지납니다.
  삼례는 동학농민혁명에서 각별한 의미가 있는 곳입니다. 1894년 9월(음력) 10만여 농민군이 항일 투쟁의 깃발을 앞세우고 재집결한 2차 봉기 장소입니다. 일본군이 경복궁을 침범하고 청일전쟁을 일으키자 일본군과 탐관오리를 아내기로 결의한 농민군들은 삼례뜰에서 거대한 물결을 이루었습니다. 이에 앞서 1892년 11월(음력)에는 동학교도 수천명이 교조 최제우의 억울함을 탄원하기 위해 모인 장소이기도 합니다. 이른바 교조신원운동(敎祖伸寃運動)라고 불리웁니다.
  삼례집회는 전라감영의 무력진압을 각오한 것으로 실은 탐관오리에 대한 투쟁이었습니다. 이들은 삼례역에 모여 두차례 전라감영에 의송(議送)을 보내 동학 교조의 신원(伸寃)을 할 것과 동학도에 대한 수탈 중지를 요구했다고 합니다. 삼례집회는 본뜻을 이루지 못했으나 동학도에 대한 부당 주구금지 조치를 얻어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익산으로 가는 국도 1호선을 건너 비비정으로 향합니다.


  이곳에 오르면 전주시내와 호남평야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앞으로는 한내가 흐르고 주변으로 드넓은 평야가 펼쳐져 풍광이 대단히 아름답습니다. 옛 조상들은 이곳을 비비낙안(飛飛落雁)이라 했다. 양반들은 이 정자에 앉아 술을 마시고 시를 지어 주고 받으며 정취를 달랬다고 합니다. 깊고 천이 넓어 군산, 부안에서 온 소금배와 젓거리배가 쉴새 없이 오르내렸다고 하는데, 지금은 낚시꾼만이 다녀갑니다. 호남대로는 비비정 옆 언덕을 지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평야가 펼쳐집니다. 오른편으로 월드컵경기장이 보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때마침 기차가 지나갑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공사를 하고 있습니다. 한내가 유유히 흐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삼례교입니다. 전주를 오가는 통로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아스팔트 길이 옛길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전라선이 지나는 철교. 왼쪽으로 보이는 길이 옛길입니다.


  전라선 철도도 동산농장에서 생산되는 쌀을 반출하기 위해 부설된 사설 협궤 철도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동산농장이 있던 곳에는 전주월드컵경기장이 들어섰습니다. 옛길은 완주군 삼례읍을 지나 구정·용정·용덕마을을 지나면서 평야지대를 달립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화물선이 지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수탈의 상징이었던 철로와 우리 민족의 옛길이 나란히 달립니다.

 
  더이상 갈 수 없었습니다. 건널 수 있는 다리가 없었습니다. 날씨마나 좋았다면 더 월드컵경지강까지 선명하게 보였을 텐데, 아쉬움이 남습니다. 옛길은 전북의 도청 소재지인 전주시의 서쪽 변두리를 지납니다. 그러니까 제가 걷고 있는 저 반대편 길 말입니다. 그곳은 호남대로라는 옛말이 무색할 정도로 나지막한 구릉지대를 지나는 옛길은 한적한 2차선 도로로 변했습니다. 한 기사에서는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옛날 원이 있었다 해 붙여진 전주시 원동을 지난 옛길은 전주∼군산간 국도 26호선과 교차한다. 국도 26호선은 호남평야에서 생산된 쌀을 군산항을 통해 일본으로 반출하기 위해 일제가 만든 길이다. 봄이면 전국에서 가장 긴 일백리 벚꽃터널을 이룬다. 벚나무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재일교포들이 전해준 것이다. 일제가 수탈을 위해 만든 길에 재일교포들이 일본의 나라꽃을 심은 길은 이제 전주와 익산, 군산을 연결하는 산업도로로 변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비비정입니다. 옛날 조상들은 이곳에서 새들이 날아가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비문을 읽어보니, 과거객들도 이곳에서 쉬었다 가곤 했다고 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내를 건너 이런 오르막을 올라 비비정으로 향했겠지요.


  옛길을 걷고 돌아오는 길. 과거객이 된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날마다 시험을 치는 듯합니다. 아니면 봇짐을 등에 짊어맨 보따리 장사일까요? 어깨가 무겁습니다. 역사 속에서 걸어나오는 날입니다. 이 역사를 계속 이어나가는 게 우리의 사명이 아닐까요? 여러가지 문제로 전국이 왁자지껄 합니다. 호남대로에 찍힌 조상의 수없는 발자국에게 부끄럽지 않는 민족이 되었으면 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사용자 삽입 이미지

 소피아는 허전합니다. 공산주의가 몰락하면서 변화하는 시대에 어깨를 나란히 하지 못한 까닭입니다. 공산주의 시대 때 지어진 건물은 담백하기 그지 없습니다. 서유럽에서 느껴지는 소박하고도 자유로운, 화려한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죠. 그래서 관광지로는 적합하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둘러본 유럽 여러 국가 중, 가장 사람 냄새가 펄펄 풍기는 곳입니다. 소피아에서 만난 사람들은 착하고 순박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지하 교회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몰래 미사를 드렸던 곳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모스크 양식이 섞인 교회도 볼 수 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소피아의 상징, 알렉산더 네브스키교회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인상 좋은 복덕방 할아버지 같은 소피아 대학교 알렉산더 페도토프 부총장

사용자 삽입 이미지

소피아 대학의 내부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국학과 건물

사용자 삽입 이미지

최근에 지어졌다고 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기증된 한국 관련 서적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동유럽에서 만난 훈민정음

사용자 삽입 이미지

소피아 대학의 한국학과 학생들

 소피아 대학에서 만난 한국학과 학생들. 저학년과는 짧은 영어로 대화를 나눠야 했지만, 고학년과는 한국어로 대화가 가능했습니다. 특히 한자도 잘 알고 있는 학생을 만났을 땐, 놀랍기도 하고 반갑기도 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소피아의 벼룩시장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선물가게 내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소피의 교통수단, 트램

사용자 삽입 이미지

소피의 교통수단, 트램

 소피아는 변하고 있었습니다. 언젠가 저 트램도 사라지겠죠. 낡은 건물이 무너지고 새로운 건물이 들어설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순박한 마음만은 남겨두었으면 합니다.
 소피아 대학에서 만난 한국학과 학생들이 그리워집니다. 그때 만났던 저학년 학생들, 이젠 한국어로 대화가 가능해졌겠죠?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사용자 삽입 이미지

순창 장구목 요강바위


I ♡ KOREA  뉴스로 재송고하였습니다.



 높이 2m, 폭 3m고 무게가 무려 15톤이나 되는 바위가 도둑 맞았다고 하면 믿으시겠어요? 도둑 맞은 바위가 4년 만에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것은 소설 속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세요? 제가 더욱 믿기 힘든 사실은 저 큰 바위를 섬진강의 줄기가 수백년, 수천년 동안 뚫어 왔다는 것입니다. 강물은 가끔 여울지고, 또 가끔은 느긋하게 흘러갔을 뿐인데, 바위에 구멍이 났습니다. 다 큰 어른이 들어가도 충분한 구멍이 생겼습니다. 비라도 내려 구멍 속에 빗물이라도 고이면, 꼭 요강처럼 보여 요강바위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바위. 물과 세월이 만들어낸 힘을 몸으로 벼여주고 있는 바위. 졸졸졸, 요강바위를 아시나요?

 중학교 1학년 2학기 국어교과서에 보면 < 섬진강 기행 > 이라는 김훈의 기행문이 있습니다. 이 글은 김훈 소설가가 섬진강 상류를 따라 자전거로 여행한 기행문입니다.. 때묻지 않은 섬진강 상류의 아름다움을 잘 드러내는 글이다. 물안개로 유명한 섬진강 상류 옥정호에서부터 시작되는 이 기행문은 < 자전거 기행 > 의 일부분입니다.

 장구목 한 가운데에 놓여있는 요강바위는 내룡마을 사람들이 수호신처럼 받들고 있는 돌입니다. 요강처럼 가운데가 움푹 패인 이 바위는 높이가 2m, 폭 3m고 무게가 무려 15톤이나 됩니다. 한국전쟁 때 마을 주민들 중에는 바위 속에 몸을 숨겨 화를 모면한 사람도 있었다고 할 정도로 움푹 패여 있습니다. 아들을 낳지 못하는 여인이 앉으면 아들을 낳을 수 있다는 등의 여러 이야기를 간직한 요강바위는 장구목 마을의 상징물입니다.
 언젠가 이 바위를 누군가 감쪽 같이 훔쳐 간 적이 있습니다. 그 황당한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그런데 어느 해 20 여 명의 사람들이 중장비를 끌고 와서 무게가 25톤이나 되는 요강바위를 몰래 뽑아갔다. 도둑들은 요강바위를 경기도의 한 야산에 숨겨 놓고 살 사람을 물색했다.놀랍게도 바위 값은 10억 원이 넘었다.  수백 년 세월을 마을 사람들과 함께해 온 요강바위가 사라지자 장구목 주민들은 분개해서 바위를 찾아나섰다.수소문 끝에 야산에 숨겨진 바위를 찾아내 경찰에 신고했다. 그러나 도둑들이 시치미를 떼는 바람에 마을 주민들은 법정 공방전까지 벌이며 눈물겨운 싸움 끝에 요강바위를 돌려 받았다. 그동안 요강바위는 전주지검 남원지청의 마당에 운반되어 있었다. 그런데 주민들이 남원에서 장구목까지 바위를 옮기려고 하니 중장비 사용료가 5백만 원이 든다고 했다.그러자 장구목에 사는 12가구가 돈을 각출해서 운송비를 마련했고, 마침내 요강바위는 4년 만에 원래 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장구목 요강바위 실종사건

 섬진강의 상류, 순창군 동계면 어치리를 가면 요강바위를 볼 수 있습니다. 요강바위 뿐만이 아닙니다. 강물 바닥에 깔려 있는 바위 모두, 강물과 세월이 만든 힘을 고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섬진강의 힘일까요? 우리의 마음도 이처럼 강물처럼 힘이 셌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바위처럼 마음을 내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약해보이지만 바위를 뚫은 강물과 단단해보이지만 마음을 내어준 바위. 장구목에서 저는 한참 생각에 빠졌습니다. 졸졸졸, 제 마음도 요강인가요? 졸졸졸 귀를 열어보세요.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장구목 가는 길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뜨거운 날에 오기 적당한 곳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도시락을 싸올 걸 그랬나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저 유유한 강물이 바위를 뚫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곳곳에 이런 바위가 눈에 띕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요강바위, 들여다보면 물이 여울진 흔적이 보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강물이 바위를 조각했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정말 아름다운 곡선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소풍 나온 분들도 계십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단단하지만, 마음을 내어준 바위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전주에 사시는 화가 안순덕 님의 전시장도 있습니다

지난 98년 11월에 개봉한 영화 < 아름다운 시절 > 은 6·25전쟁 직후의 어려운 시절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로, 이광모 감독과 안성기, 이인 등의 배우들이 열연한 예술극영화이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아버지 최씨가 미군부대에 일자리를 얻으면서 나날이 나아져 가는 성민의 집과는 반대로 창희네는 의용군으로 끌려간 채 소식 없는 남편을 기다리며 어머니 안성댁이 힘겹게 살림을 꾸려간다. 최씨의 알선으로 미군의 세탁 일을 하던 어머니는 어느 날 빨래를 모조리 도둑맞는다.

단짝인 성민과 창희는 동구 밖 방앗간에 숨어 들어갔다가 안성댁과 미군 하사의 정사장면을 목격한다. 다음날, 방앗간에 불이 나서 미군 한 명이 사망하고 창희가 실종된다. 이듬해 여름, 늪에서 미군의 밧줄에 묶인 채 심하게 부패된 아이의 시신이 발견되고 그 시신이 창희라고 생각한 성민은 아이들과 함께 작은 무덤을 만들어준다.

이 영화를 볼 때 강가 빨랫줄에 널어놓은 미군들의 옷이 인상적이었다. 그 강이 바로 이 섬진강 장구목이다. 우리 마음을 가득 채우는 강의 전경이 화면 가득 펼쳐질 때, 분명 가보고 싶은 마음이 설렜던 곳이다.

장구목에 관련된 뉴스

I ♡ KOREA  뉴스로 재송고하였습니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사용자 삽입 이미지

 카메라를 들고 동네를 둘러보았습니다. 코딱지만한 동네라 딴짓하며, 휘파람 불며 걸어도 삼십 여분이면 다 둘러볼 수 있는 동네를 더디게 더디게 걸었습니다. 걷다보니 빠르게 걸을 땐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전봇대를 타고 올라가는 담쟁이 덩쿨과 담벼락의 낙서까지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언제나 변하지 않을 것 같았던, 발전이라고는 전혀 없을 것 같았던 동네는 수천, 수만 색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모너질 것 같은 모퉁이와 탱탱하게 솟은 모퉁이, 구부러진 골목과 올곧게 뻗은 골목까지 똑같은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문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나무로 만든 문, 삐닥한 문, 옹이가 박힌 문, 녹슬어 가는 문, 색이 벗겨져 가는 문. 조그마한 동네의 모든 문이 서로 다른 얼굴로 골목골목에 박혀 있습니다. 문은 아무나 열고 들어갈 수 없습니다. 또 아무리 친한 집이라고 해도 밀고 들어갈 수 없습니다. 똑똑똑 두르려 기척을 하거나 주인을 불러냈을 때야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문은 서로 닮을 수는 있어도 똑같을 수가 없습니다.
 당신의 마음의 문은 어떤 모습인가요? 굳게 잠겨 있나요? 아니면 문을 열때마다 삐그덕 소리가 나나요? 언제나 열려 있어서 누구나 당신의 마음을 훔쳐볼 수 있나요? 오늘 주륵주륵 내리는 비가 그치면 동네를 한 번 천천히, 산책해 보셨으면 합니다. 골목골목에 달린 문을 보며 서로 다른 모습으로 달려 있는 문을 하나, 하나 챙겨 보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자기의 문과 가장 비슷하다고 생각되는 문 앞에 서서 사진을 찍어보는 것은 어떤가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완주군 삼례읍


 문이 없으면 저 개나리처럼 지붕을 넘을 수 밖에 없겠죠. 문이 없으면 내가 무너집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완주군 삼례읍


 문이 없으면 벽에 이삿짐센타의 전화번호가 찍힐 필요가 없겠죠. 밖에 나갈 수도,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겠죠. 문이 없으면 벽은 그저 벽이 될 뿐입니다. 문은 세상과 나를 연결하는 첫번째 통로이자 마지막 통로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완주군 삼례읍


 문이 없으면 벽은 허물어집니다. 문이 뚫리면 나와 세상의 경계가 허물어집니다. 벽은 언젠가 문이 될 가능성을 품고 있습니다. 문은 또 벽이 될 가능성을 품고 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완주군 삼례읍


 내 문은 언제나 삐그덕, 쿵 소리가 났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사람 사는 맛이 날테니까요. 동네에 숨어 있는 폐가가 안타깝습니다. 이곳에 살던 주인은 또 어느 곳에 문을 내고 밥을 지어 먹으며 살고 있을까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부안군 내소사


 문은 아름답지 않아도 아름답습니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문을 이쁘게 꾸밀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사람들이 알아보기 쉽게 길 쪽으로 내주면 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정읍


 대문이 없는 집도 있습니다. 때론 문 앞에 의자를 내어둡니다. 주인은 저 의자에 앉아 볕을 쬐며 거리를 바라보겠죠. 낡은 미닫이 문에선 드르륵 번개치는 소리가 들릴지도 모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정읍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방앗간은 안에서 기계소리가 나오는 동안은 언제나 문이 열려 있습니다. 방앗간의 문에서는 참기름 냄새가 납니다. 그리고 쌀 빻는 소리가 들립니다. 방앗간의 문은 언제나 지나가는 사람의 눈을 안으로 돌리게 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정읍


 시골의 구멍가게는 정류장의 역할도 맡습니다. 저 구멍가게로 수많은 사람들이 잔돈을 바꾸려고 들어갔겠죠. 문은 그럴 때마다 친절하게 비켜 서 주었습니다. 잔돈을 바꾼 사람은 껌을 씹으며, 담배를 피우며 문앞의 의자에 앉아 버스를 기다렸을 것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정읍


 문과 문이 이어져서 집을 이룬 것처럼 보입니다. 문과 문이 서로 내통하고 있습니다. 저 끝집의 소식을 약방 아저씨사 들을 때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겠죠. 여름 저녁이면 이곳 사람들은 문을 열고 나와 함께 고기를 구워 먹을지도 모릅니다. 삽겹살 냄새가 거리에 가득 풍길 것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정읍


 태극문양이 그려져 있는 서원의 문입니다. 아주 오랜 옛날, 백성들은 이곳을 지날 때 멈칫 했을지도 모릅니다. 백성을 마구 부려먹었을지도 모릅니다. 세금도 내지 않고 제 배만 불리기 바빴을지도 모릅니다. 굳게 닫혔던 문이 이젠 열렸습니다. 누구나 서원의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습니다. 권력의 문은 언제나 열려 있어야 합니다. 청와대의 문은 언제나 열릴까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정읍


 마을 회관에 달린 문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이곳에 모여 회의를 하겠죠. 때론 누구네 생일에 돌린 떡을 이곳에서 나눠 먹을 것입니다. 마을 회관의 문은 누구보다 동네 소식을 많이 알고 있겠죠. 저 문에서는 구수한 냄새가 납니다. 동네 할머니들이 언성을 높이는 소리가 들립니다. 걸죽한 막걸리 냄새도 풍깁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정읍


 참 신기한 문입니다. 밖에서 문을 걸어잠글 수 있는 문입니다. 안쪽에서 문을 걸어잠글 수 없습니다. 주인은 왜 문을 거꾸로 달아놓았을까요? 거꾸로 문을 달아놓은 사람은 어쩌면 세상을 집 삼아 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손바닥만한 마당을 세상으로 삼고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정읍


 옛집의 문은 세월을 그대로 품고 있습니다. 옹이와 나이테를 간직하며, 손때를 묻히며 지금까지 버텨왔습니다. 문지방이 닳고 닳도록 살아왔습니다. 아주 오랜 옛날, 저 문이 젊었을 땐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라진 문을 봅니다. 문은 어디로 갔을까요? 문이 있던 자리, 문이 있어야할 자리가 텅 비어 있습니다. 이젠 저 문을 두르리고 도망갈 꼬마도 없을 것입니다. 누구나 안을 엿볼 수 있는 집, 이제는 아무도 살지 않는 집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완주군 삼례읍


  모퉁이가 무너져 내린 집과 모퉁이에 금이 간 집 사이에 문이 달려 있습니다. 새로운 세상으로 통하는 문일까요? 오랫동안 저 문은 저 모습 그대로 멈춰 있는 듯 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전주시 한옥마을


 저 문을 열면 저 문의 주인은 좋아합니다. 안에서 걸어잠그지 않는 이상, 누구나 함부로 열고 들어가도 됩니다. 차 한 잔 시켜놓고 오랫동안 수다를 떨어도 됩니다. 문에서는 수다 소리가 그치질 않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전주시 한옥마을


 녹이 슬었습니다. 문고리를 물고 있는 사자 두마리. 아니, 한 마리는 문고리를 잃어버렸습니다. 동네에 달려 있는 문에서는 사자가 많이 살고 있습니다. 사나운 사자도 있겠죠. 넉넉하게 웃기만 하는 사자도 있겠죠. 언제나 으르릉 대는 사자도 있겠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전주시 한옥마을


 기와를 얹은 멋드러진 문입니다. 골목 끝에서 골목을 바라보는 문. 저 문을 열고 들어가면 또 골목이 있을 것 같습니다. 가만보니 문이 약간 삐닥하게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밑을 파서 아귀를 맞쳤군요. 때때로 저런 문 앞에서 오랫동안 골목을 지켜보고 싶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전주시 한옥마을


 서점이 있던 자리. 이젠 퀘퀙했던 헌책의 냄새를 맡을 수 없습니다. 멀쩡한 아버지의 책을 팔아 혼이 나던 꼬마들도 없습니다. 사라져가는 풍경들이 아쉽기만 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전주시 한옥마을


 벽과 문을 구별 할 수 없습니다. 온통 파란색 칠이 되어있는 집. 처음 저 집을 찾는 사람은 한 참 집 앞에서 서성일지도 모릅니다. 문을 찾으면서 말이죠. 그러나 서성일 필요가 없습니다. 가장 따뜻한 곳이 문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완주군 삼례읍


 한쪽 가슴에 우편 수집함을 달고 있는 문입니다. 집의 소식을 가장 먼저 접하겠죠. 저 문은 가슴 아파할지도 모릅니다. 빨간색 글씨의 독촉장을 볼 때마다 안타까워 할지도 모릅니다. 저 문이 언제나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완주군 삼례읍


 양철문입니다. 저 문을 열고 닫을 때마다 천둥소리가 들립니다. 무서울 것 같지만 마음도 좋아서 문 밑으로 동네 개들이 드나들어도 화를 내지 않습니다. 저 문을 열고 들어가면 고철과 고물들이 보물처럼 쌓여 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완주군 삼례읍


 담쟁이 넝쿨 때문에 문이 귀찮을 것 같습니다. 녹이 슬고 슬어 꼭 나무처럼 보이는 문. 쇠붙이도 오래 묵으면 식물처럼 자라는 것 같습니다. 저 집에 사는 사람은 저 살짝 열린 문틈으로 그냥 다닐지도 모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완주군 삼례읍


 2층으로 오르기 위해 1층을 통해야 할까요? 오래 된 동네를 가면 유난히 거리로 부끄럽게 나와있는 문이 많습니다. 마당이 없는 집. 그래도 골목이 있어 얼마나 다행일까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완주군 삼례읍


 은색으로 예쁘게 단장했습니다. 한쪽으로 빨간 장미도 키우고요. 부지런한 주인을 새벽마다 저 오토바이를 타고 출근을 할 것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완주군 삼례읍


 저 문앞에서 한참 고민했습니다. 문에 새겨진 글씨는 무슨 뜻일까요? 바닷가도 아닌데, 소금공장이 있는 것일까요? 무거운 문을 붙잡고 있는 양철담장이 힘겨워 보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완주군 삼례읍


 노란장미를 머리에 이고 있는 문입니다. 꽤 단아하게 달려 있습니다. 저 문을 열고 들어가는 사람은 매일 노란 장미를 바라 볼 수 있겠죠. 가끔 장미를 만지다가 가시에 손을 찔리는 날도 있겠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완주군 삼례읍


 집과 벽이 대부분 허물어지고 문만 남았습니다. 마당에는 벽돌만 남아 있습니다. 문은 오랫동안 외롭습니다. 주인의 지문도 잃어버린지 오래일 것입니다. 술에 취해 고래고래 노래를 부르던 주인집 아저씨의 목소리도 잊어버렸을지도 모릅니다. 콧물 묻은 손으로 문을 열고 닫던 주인집 아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또 다른 문을 열고 닫으며 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문에 달린 경첩도 이제 굳어갑니다.


 이 세상엔 자신의 문을 갖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평생 자신의 문을 갖지 못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문에 세들어 삽니다. 그리고 똑같은 문을 달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높다란 아파트에 가면 골목은 없고 집집마다 똑같은 문을 달고 있습니다. 초인종을 누르면 누군지 확인을 하고 문을 열어줍니다. 쿵쿵 문 두드리는 소리도 이젠 옛소리인가요? 사라지는 것들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당신의 마음의 문은 어떤 모습인가요? 비록 자신의 문을 갖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문에 세들어 살아도, 마음 속에 멋진 문이 달려 있지 않나요? 아파트에서 똑같은 문을 달고 살고 있어도, 마음 속의 문은 색깔도, 생김새도 모두 다르지 않나요?
 삐그덕, 삐그덕 문을 여닫는 소리가 좋습니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도 좋습니다. 문이 낡아가는 소리도 좋습니다. 문을 열고 나가면 시끄러운 골목이 나오고, 골목을 걸어나가면 호떡장사도 오뎅장사도 있습니다. 그리고 골목을 벗어나 큰 길로 나가면 버스정류장도 있습니다. 버스를 타고 세상의 모든 문을 돌아다닐 수도 있습니다.
 오늘은 굳게 닫힌 마음을 열어보세요. 빗장을 풀어보세요.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